우리는 눈 앞의 환경이 평안할 때,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신학에 대한 지식도 쌓이고, 성경 말씀도 많이 암송하고, 교리도 정확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고난은 단순히 우리를 시험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지식에서 체험으로 옮기는 언어입니다. 오늘은 시편의 탄식 시편들을 통해서, 우리 삶에서 고난의 시간이 어떻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의 언어가 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난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
지식과 경험의 차이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과 실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것과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평안할 때 우리는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라고 고백하지만, 이것은 종종 머리로 동의하는 개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현장에서 고난이 찾아올 때, 이 개념들은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정말 선하신가?"라는 질문이 철학적 토론이 아니라, 밤을 새워 씨름해야 할 실존적 질문이 됩니다. 이 씨름의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욥의 고백이 보여주는 전환
사실 욥은 고난을 겪기 전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고난을 겪고 난 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 '들었지만', 이제는 '보았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욥에게 하나님을 전승된 지식에서 직접적인 만남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역설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가까이 이끕니다. 하나님에 대한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경험으로 바뀌는 것, 이것이 고난이 주는 관계적 선물입니다.
시편의 탄식의 진심
탄식 시편의 솔직함
시편 150편 중 거의 3분의 1이 탄식 시편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성경이 고통 중의 절규, 하나님께 대한 질문, 심지어 원망까지도 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솔직한 감정을 원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시편 13편에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내 영혼에 근심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슬픔을 품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리이까"(시 13:1-2). 이것은 정제된 기도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통받는 사람의 날것 그대로의 외침입니다.
형식이 아닌 본심
평안할 때 우리의 기도는 종종 형식적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축복해주세요", "인도해주세요" 같은 익숙한 문구들로 채워집니다. 이런 기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깊은 관계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마치 "안녕하세요", "날씨 좋네요"라는 일상적인 인사만 주고받는 관계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는 그같은 형식을 유지할 여유가 없습니다. 시편 22편의 다윗처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라고 외치게 됩니다. 이것은 예배당에서 배운 기도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본심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이런 기도를 원하십니다.
시편 62편 8절은 말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마음을 토한다'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의 것을 다 쏟아내기를 원하십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가까이 부른다
절박함이 만드는 친밀함
사람은 급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을 부릅니다. 위험에 처한 아이는 "엄마!"라고 소리칩니다. 이론적으로 부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를 찾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난 중에 우리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 더 절박하게 부르게 됩니다.
시편 34편 18절은 "여호와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들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만듭니다.
야곱의 얍복 강가 경험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이것은 절박한 순간의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밤에 야곱은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받았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창 32:30)고 고백했습니다.
평안할 때 야곱은 하나님을 조금 멀리서 섬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난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통로입니다.
고난은 신앙의 깊이를 만든다
얕은 신앙과 깊은 신앙의 차이
햇빛만 받는 땅에서는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않습니다.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리는 것은 물을 찾아 땅속 깊이 파고들어야 할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표면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이라는 가뭄이 찾아올 때, 우리는 생명수를 찾아 더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시편 42편 7절은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라고 노래합니다. 고난이라는 깊은 곳이 하나님이라는 깊은 곳을 부릅니다. 표면적인 신앙으로는 닿을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곳을, 고난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들의 깊은 고백
시편 63편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고난 중에 나온 기도입니다.
시편 73편의 아삽도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이라는 깊은 실존적 질문과 씨름한 후에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라는 깊은 고백에 도달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깊이는 평안할 때 자동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구체적 설명은 없다
답이 아닌 존재
앞서 살펴본 욥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욥은 40여 장에 걸쳐 "왜?"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타나셨지만, 욥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 38:4)며 당신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입니다. 욥이 받은 것은 '왜'에 대한 답이 아니라 '누가' 함께 계시는가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약속
이사야 43장 2절은 아름답게 약속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물과 불을 만나지 않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과 불 가운데서 '함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고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 임재하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시편 23편 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골짜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골짜기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관계적 선물입니다.
맺음말
고난은 관계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교리와 개념의 영역에서 체험과 만남의 영역으로 옮겨놓습니다. 시편의 탄식 시편들이 보여주듯, 고난 중에 우리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심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솔직하고 절박한 대화 속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깊어집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가까이 부르게 만듭니다. 평안할 때는 멀리서 예배하던 하나님을, 고난 속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달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앙의 깊이가 만들어집니다.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에서, 깊고 실존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누가' 함께 계시는가에 대한 확신이라는 것을. 욥처럼, 우리도 답은 얻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대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모든 설명보다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지금 고난 속에 있다면 형식적인 기도 대신,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토해내길 원합니다. "왜?"라고 묻고, 원망도 좋고, 절규도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솔직함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실제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가장 큰 선물, 바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입니다.
